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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구의 증명 서평|최진영 소설, 사랑과 상실을 읽고 남긴 기록
    배움/도서&인사이트

    • 저자: 최진영
    • 출판사: 문학동네
    • 출간일: 2015년
    • 수상 내역: 제6회 수림문학상 수상작
    • 형태: 장편소설
    • 주제: 사랑, 상실, 존재 증명, 식인이라는 극단적 애도 방식

    『구의 증명』은 읽는 내내 사랑과 상실이 한 문장 안에 같이 들어 있는 느낌이었다.

    사랑하는 사람을 잃는다는 건 그 사람이 눈앞에서 사라지는 일로 끝나는 게 아니라,
    함께 보낸 시간과 기억, 내가 그 사람과 함께 있을 때의 나까지 같이 흔들리는 일일지도 모른다.

    이 소설은 그런 상실을 식인이라는 아주 극단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. 호기심이 들면서도 낯설고 불편했다.
    그런데 읽을수록 그 행동 자체보다 ‘왜 그렇게까지 해야 했을까’를 생각하게 됐다.

    구와 담에게 사랑은 예쁘고 안전한 감정이 아니다. 가난과 불행, 불안과 상처를 같이 통과한 시간이고, 서로를 붙잡고 있어야만 버틸 수 있었던 삶에 가깝다.

    그래서 둘의 관계를 읽다 보면 사랑을 증명한다는 말이 조금 무섭게 느껴진다.

    1.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무엇이 남을까

    누군가와 오래 함께한다는 건 그 사람을 기억하는 것 이상으로,
    그 사람이 내 삶의 일부가 되는 일이라고 생각한다.

    좋아하는 음식이나 말투처럼 사소한 것부터,
    특정 장소와 계절, 함께 겪은 사건까지.

    그 사람과 연결된 기억이 많아질수록 그 사람이 사라졌을 때 비어버리는 자리도 커진다.

    『구의 증명』에서 담은 단순히 구라는 한 사람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구성하던 큰 부분을 함께 잃은 것처럼 보였다.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며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이것이었다.

    '사람이 사라진 뒤에도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은 어디에 남을까?'

    2. 담의 행동은 사랑일까, 애도일까

    식인이라는 설정은 분명 충격적이다. 처음 읽을 때는 그 장면 자체에 시선이 간다. 그런데 조금 지나고 나면 그 행동을 단순히 기괴하다고만 보기는 어려워진다. 담에게 그것은 사라지는 구를 어떻게든 자신의 안에 남기려는 행동처럼 느껴졌다.

     

    죽은 사람의 몸은 사라지지만, 그 사람과 함께한 기억까지 같이 사라지지는 않는다. 어쩌면 담은 그 기억을 놓치지 않기 위해 가장 극단적인 방식으로 애도하고 있었던 게 아닐까.

    물론 그것이 옳거나 이해 가능한 행동이라는 의미는 아니다. 다만 소설을 읽는 동안 ‘나라면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’는 생각과 동시에 ‘사랑하는 사람의 흔적이 완전히 없어지는 걸 견딜 수 있을까’라는 질문도 같이 남았다.

    3. 구와 담의 사랑이 더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

    둘의 사랑은 편안한 환경에서 자란 두 사람이 만나 행복을 쌓아가는 이야기가 아니다.

    둘에게는 서로가 거의 유일한 안전지대처럼 느껴진다. 힘든 환경 속에서도 서로의 존재만큼은 확실했고,그래서 둘의 관계는 일반적인 연애보다 생존에 가까운 느낌까지 든다.

    이런 관계에서는 한 사람을 잃는 일이 단순한 이별이 아니다. 내가 버틸 수 있었던 이유 자체가 사라지는 일이 된다.

    그래서 구의 부재 이후 담이 무너지는 과정이 더 아프게 읽혔다.

    4.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

    제목인 ‘구의 증명’도 오래 남았다. 사람이 존재했다는 건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.

    사진이나 기록, 남겨진 물건, 다른 사람의 기억.

    그런 것들이 모두 증거가 될 수 있겠지만, 결국 가장 오래 남는 건 누군가의 삶 안에서 그 사람 때문에 달라진 부분일지도 모른다.
    구가 사라진 뒤에도 담의 삶에는 구가 남아 있다. 기억 속에 있고, 감정 속에 있고, 살아가는 방식 안에도 남아 있다.
    어쩌면 한 사람의 존재는 그 사람을 기억하는 다른 사람을 통해 계속 증명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.

    5. 다 읽고 난 뒤 남은 건 충격보다 부재였다

    처음 이 책을 알게 됐을 때는 자극적인 설정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. 읽는 동안에도 불편한 장면이 분명 있었다. 그런데 책을 덮고 나니 이상하게 그 장면보다 ‘부재’라는 감정이 더 오래 남았다.

    매일 함께하던 사람이 어느 날 완전히 사라지고,
    말을 걸 수도 없고,
    새로운 기억을 만들 수도 없는데,
    이미 만들어진 기억은 너무 많이 남아 있는 상태.

    그걸 어떻게 견뎌야 할까.

    사랑이 깊을수록 상실도 깊어진다는 아주 익숙한 말을 이 소설은 꽤 잔인한 방식으로 보여준다.

    6. 총평

    『구의 증명』은 편하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. 읽고 난 뒤 생각할 거리가 오래 남았다.

   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지,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, 그리고 사람은 사랑하는 사람을 잃은 뒤 어떻게 살아갈 수 있는지.

    나는 이 책을 사랑 이야기라기보다 사랑 이후에 남겨진 사람의 이야기로 기억할 것 같다.

    누군가를 잃어본 사람이라면 담의 행동 자체에는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‘사라진 사람을 어떻게든 붙잡고 싶은 마음’의 한 조각 정도는 이해할 수 있지 않을까.

    결국 사람은 사라져도 그 사람이 남긴 흔적까지 사라지는 건 아니다.
   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, 습관 속에서, 삶의 방향 속에서 계속 남아 있다.

    어쩌면 그것이 우리가 할 수 있는 가장 현실적인 존재의 증명인지도 모르겠다.


    수집문장

    • 구 : 나는 담에게 들을 과거가 없었다. 함께 겪었으니까. 겪을 때마다 감정을 공유했으니까. 그때 우리 열한 살 여름에 개천에서 같이 피라미 잡다가, 라고 담이 얘기를 꺼내면, 너 신발 한 짝 떠내려가서 그거 잡는다고 우리 둘 다 죽을 뻔했을 때? 라고 다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. 설명 없이도 대화는 성큼성큼 나아갔고 감정은 절로 드러나 꾸밀 필요 없었다. 침묵이 어색하거나 불편하지도 않았다.
    • 구 : 나는 네게 해야 할 말을 다 했던가? 아니지. 무엇이 아닌가 하면, 말이고 진심이고 그런 게 아니라, 너는 내가 죽기 전에 왔어야 했다. 내가 그것을 바랐다는 걸 죽는 순간에야 알았다. 너를 보고 싶었다. 낡고 깨진 공중전화부스가 아니라, 닳고 더러운 보도블록 틈새에 핀 잡초가 아니라, 부옇고 붉은 밤하늘이나 머나먼 곳의 십자가가 아니라, 너를 바라보다 죽고 싶었다. 너는 알까?
    • 담 :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.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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